느티나무아래서 시를 읽고 텃밭을 가꿔요

전원에서 살아남기

느티나무하우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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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눈이 주는 선물

살며시 다가온 다정한 눈길 내 앞길을 밝혀주네 눈부시게 아름다운 겨울날 하얗고 뽀얀 눈이 주는 선물 주머니속에 넣은 두 손 잡고 가슴 뛰는 소리 들으며 갈잎 낙엽이 수북히 쌓인 너와 내가 걷던 그 길에도 포근포근 사락사락 눈이 내렸지 이제 우리는 활활타는 벽난로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살아 가진 것 없어도 바랄 것도 없어 내 앞길엔 네가, 네 앞길엔 내가 그렇게 그렇게 살아가면 될거야 우주에서 날아온 선물 덕분이야 살며시 다가온 다정한 손길 지난 날을 보여주네 생생한 우리들의 여름날 아름다운 추억 간직한 풍경 우리 가는 길따라 나오며 울타리안에서 짖어대는 강아지 불타오르듯 피어난 금송화 다소곳이 맞이했던 길에도 포근포근 사락사락 눈이 내렸지 이제 우리는 활활타는 벽난로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살아 가진 것 ..

2020.12.14

새벽 1

Ⅰ. 가장 낮은 조명아래 낯설은 것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가장 가까운 사람도 빛과 함께 낯설어진다. 가끔씩 생기는 거리를 가슴에 묻고 매일 만나고 헤어지는 빛과 어둠 살을 맞대고 있다. Ⅱ. 빛이 힘을 잃고 어둠이 힘을 잃고 나 또한 버릴 것이라곤 목숨뿐 도매시장에는 막 잠을 쫒아낸 사람들이 질긴 생명을 건져 올린다. 옷깃에 떨려나는 빛 옷깃에 묻어나는 어둠 비린내에 취해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빠져나온 빛은 아직 물러가지 못한 어둠을 차곡차곡 주머니에 접어 넣으며 출근을 한다.

2020.09.21

신록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완연한 조화의 빛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도 네 빛에 물이 들겠네. 단단히 얽어 매어온 내 작은 세계에 풀빛 바람이 들어 네 맘 속에 빠져버리겠네. 뚝뚝 떨어져 내리는 싱그러움 구름에 실려 번지는 정오 한 나절 발 밑에 작은 그늘을 마련해 놓고 누군가 기다리는 모습 남풍에 머리를 감고 햇살로 빗어 넘기며 젊음을 자랑하네. 아! 샘 솟는 질투 어찌할 거나 늘어만 가는 주름살 펴야하겠네 그래도 너는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네.

2020.08.30

구슬

산이 머리를 풀고 드니 풀숲도 내도 옷자락을 흔들며 발끝까지 굽이친다. 잠잠하던 들판도 온갖 빛깔로 결실의 꿈을 한데 모은다. 휘젓고 싶어도 휘저어지지 않는 너른 하늘이 가슴까지 와 닿는다. 아무 데나 부딪혀 깨질듯한 想念 궁굴려져 또아리 틀고 감추어도 드러나는 아집 산 그늘에 절였다가 들판에 쏟아지는 농부의 땀에 삭혔다가 하늘 한번 들이마시고 나면 내가 품은 구슬 나의 작은 우주는 숨소리도 죽이고 산은 산대로 들은 들대로 있는 그대로 맞아들인다.

2020.08.22

저녁 이후

바쁜 손을 씻으며 내 안에 소리치는 불협화음 거두어 산 자락에 소원 하나 얹어 놓는다. 한낮에 눌린 어깨 된장국에 풀어 해갈하는 강줄기 몇올 남은 빛의 머리칼 야윈 핏줄의 신음 소리 언 땅에 묻고 웃을 채비를 하는 들판에 갈갈이 흩어져 날리는 것들 잠 재우는 어둠의 밀물 조금씩 허물어지는 너와 나의 경계 산 너머로 돌아가는 시간을 붙잡고 가까이 다가서며 더욱 멀어지며 오한을 앓는다. 산도 하늘도 가슴을 마주대고 침몰하며 변신의 깃을 치는 저녁 이후.

2020.08.09

사진첩

한 순간의 정지된 아름다움 쌓이고 쌓여 알 수 없는 끝을 향해 달려간다. 제자리에 머울러 있지만 흐르는 강이다. 아무도 모른다. 어드메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종착역 갈림길의 끝이 언제 나를 휘감아 작은 가슴의 겨울 바다를 앗아갈지. 들을 수 없다. 세상 천지에서 쏟아지는 소음 아닌 소음 가슴에서 솟구치는 그대 그리워 시간을 태우던 흐느낌 험한 계곡을 저어가던 바람 소리. 그 바람 속에 형체 없는 시간이 보인다. 어제는 흔들리며 오늘은 인내하는 젊음의 시간속에 서려있는 꿈도 보인다. 그 꿈들이 흐르고 흘러 점묘화로 피어난다.

2020.08.06

들판

소리는 못 들어도 감촉은 예민한 살갗에 처음엔 작고 귀여운 망울 하나 돋더니 어느 날 따뜻한 입김은 가슴을 녹이고 뿌리 언저리에 서성이는 시심을 녹이고 형형색색으로 돌출하는 생각의 창고를 돌아 내 온몸은 망울이 숲을 이루더니 꽃샘 바람도 쉬어가고 사랑하는 그대의 손길도 쉬어가고 겨울 귀퉁이에 숨어서 길고 긴 사설을 젖은 옷가지에 내뱉던 어머니의 마른 기침도 뛰쳐 나온다.

2020.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