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아래서 시를 읽고 텃밭을 가꿔요

전원에서 살아남기

느티나무하우스 이야기

수필 33

노트는 영혼의 안식처

겨울날엔 좀 게을러진다. 커튼사이로 햇살이 바알갛게 스며들어올 때 일어난다. 아쉬울 게 없고 급할 게 없어서일 것이다. 봄날에, 한 여름에, 가을에 부지런을 떨며 일찍 일어나 아침 먹기전에 마당을 둘러보며 열매도 따고 풀도 뽑기도 한 날들의 보상으로 생각한다. “해님도 내 방에 늦게 나타나는데.” 이런 어린애다운 생각을 하다니. 할 일도 적은 때라서 마음이 느긋하고 푸근하다. 그런 게으름을 느긋함으로 포장한다. 겨울날은 그래서 좋다. 한 밤중이나 새벽은 도심지보다 2도 정도는 더 추워서 일어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더구나 햇살이 없는 한낮의 겨울날은 왠지 으스스하여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진다. 집안에만 있자니 쓸쓸하고 번잡한 서울로 외출해보고 싶다. 생각은 잠시 뿐 그런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내 상황에 ..

수필 2022.12.29

마음 가는 대로

동요는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동시다. 동요를 부를 때마다 어쩜 이렇게 가사에 꼭 맞게 작곡을 했을까 감탄하곤 한다. 나도 언젠가는 가사를 잘 지어서 동요로 부를 수 있게 작곡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내가 동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전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동시를 외워서 발표하는 것을 보고 나서였다. 서툴지라도 습작해본 것을 작은 잡지에 시와 동시를 투고하기도 하였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잊고 지냈던 길을 우연히 ‘아동문예’라는 잡지를 알게 되면서 걷게 되었다. 시보다 동시가 더 내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시는 접어두고 동시를 써왔다. 4권의 동시집을 내었지만 인정할 만한 문학상도 못 받은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하나 있다. 오래전부터 내가 지은 가사로..

수필 2022.12.28

내 뜻대로 안 되는 세상

학창시절엔 공부하고 노는 게 전부다. 그 나머진 어른들의 몫이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안 나올 때도 있고 대강 했는데 잘 나올 때도 있다. 꾸준히 기초를 닦다보면 언제가는 성과가 난다는 생각으로 공부할 때는 누가 시켜서 하지 않고 내 뜻대로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이나 자녀 교육에 있어서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경우의 수가 많다. 주의산만해서 제 맘대로 행동하는 아들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는 규칙이 잘 통하지 않았다. 또 선생님 말씀 잘 듣는다는 말에 철썩같이 믿은 아들이 방에서 공부는 안 하고 컴퓨터 게임만 하는 걸 알게 된 적도 있었다. 그 날로 즉시 컴퓨터를 거실로 꺼내 왔다. 그 이후 아들과의 관계도 서먹해지기도 했지만 컴퓨터가 ..

수필 2022.12.28

호미로 시를 쓴다

전원주택에 이사온 첫해에는 풀도 많이 안 생겨 그럭저럭 살만했다. 삼년째 되다보니 풀도 자리를 잡았는지 뽑고 나면 어느 새 씨뿌린 듯 작은 싹들이 빽빽하게 솟아나 있다. 남편은 텃밭, 나는 꽃밭. 이것이 관리구역이었는데 구역을 지키기가 어렵다. 바쁜 일로 서울에 가거나 병원 나들이가 있거나 여행 일정으로 관리 기한을 넘긴 경우다. 텃밭과 꽃밭을 한 바퀴 둘러본 후 각자 자기 구역의 일에 몰두한다. 먼저 끝낸 사람은 다른 구역의 일에 손을 보탠다. 텃밭의 일을 끝내고 온 남편이 내가 풀뽑는 걸 보다가 호미를 들고 거든다. 물론 나도 텃밭으로 건너가 풀뽑는 것뿐아니라 열린 가지 호박 오이를 거둬서 주면 내가 받아오기도 하고 따기도 한다.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비온 후엔 더하다. 옥수수 심어 놓은 곳엔 옥..

수필 2022.02.06

인생 이모작

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쉽게 알려주는 거라면 수원화성을 지을 때 고안한 거중기와 정조 임금이 강을 건널 때 만들어 사용한 배다리라고 알고 있다. 부끄럽게도 정약용의 흠흠신서는 제목만 알고 내용은 잘 모른다. 읽어본 적이 없다. 형법서라는 그 책을 은대고전문헌 연구소 자문위원 이강욱은 2년간 작업하여 번역하였다고 한다. 83년 23세때 냉장고 부품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의수를 착용하고도 자격증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평생 매달릴만한 일을 찾은 그에게 다가온 것이 한문과 역사학이었다. 전주서당에서 명심보감과 사서삼경도 배우고 30여년간 한문고전 번역가로서 활동하였다. 보통 직장을 다니다 은퇴한 이후에는 편안히 쉬며 노후를 보내고 싶어한다. 한 일년쯤 쉬다보면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할 ..

수필 2022.02.04

더 많은 버림을 위한 발자국

태풍이 부는 날, 마당의 나무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거실 유리창을 통해 본 풍경속의 나무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대며 나풀거리는 옷들을 부여잡고 있다. 이파리들은 여자들의 머리카락처럼 흩날린다. 그 중에 정원 구석에 심은 소나무가 태풍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이웃에서 분을 떠서 주신 나무다. 유난히 주지가 길게 뻗어 올라가서 휘청대는 모습이 쓰러질까 조마조마하다. 잘 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면목도 없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목이 마를까봐 물도 주기적으로 주고 막걸리도 사다가 부어주었던 나무다. 남편과 나는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밖으로 나갔다. 키다리 아저씨같은 소나무의 맨 꼭대기 주지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운데로 길게 뻗어올라간 주지를 톱으로 자르고 나니 키가 작아져서..

수필 2022.02.04

삶의 짐

철새들이 서식지를 옮길 때는 체력만 키우면 된다. 좀 더 살기좋은 곳으로 갔다오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먼 길을 떠날 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은 이사를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나도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면서 부담스러운게 이삿짐이었다. 그 많은 살림살이가 시골집에 다 들어갈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걱정이 짐처럼 어깨에 매달려 한 달 정도 있었다. 누구나 짐을 안고 메고 산다. 감당하기 어려운 살림살이에 치여서 살기도 하고 괜한 걱정거리로 마음의 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이삿짐은 점점 줄어 갔다. 이삿짐이 해결되니 걱정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힘들게 이사오고 나니 새로운 걱정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런 걸 ..

수필 2022.02.04

추상 속의 구상-이도선 화가의 작품을 보고

이도선미술관 개설 운영 http://www.kahm.kr ( 한국미술역사관/사립미술관/이도선미술관 ) 구글에서 검색할 때 개인 홈 홈페이지 https://www.dosunleeart.com https://sites.google.com/view/dosunleeartcom#h.bw37qgl60cfr 내가 존경하는 이도선 작가의 작품을 싸이트에서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미술역사관 개관 기념 2021 한류스타작가전 서양화부문에서 을 수상하였다. 또한 2021 한국미술진흥원 서양화부문에서는 을 수상하였다. 정말 축하드리며 작년에 쓴 글을 올린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79년부터 화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한다. 학교에서 방학이 되면 작업에 몰두하며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하였고..

수필 2022.01.27

평생이라는 말에 대하여

물맑고 공기 좋은 양평으로 이사온 후 자주 쓰는 말이 있다. 바로 ‘쉴 새가 없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마당에 나가 텃밭과 꽃밭을 살펴보고 강아지 밥과 물도 챙긴다. 잠시 살펴본 후 아침을 먹는다. 쌀쌀한 가을 날엔 따뜻하고 향긋한 메리골드 꽃차 한잔이 좋다. 꽃을 따서 말리고 살짝 덖어서 만든 꽃차다. 처음 양평에 발을 디딘 후 평생학습관을 다닐 때 배운 것이다. 메리골드나 과일을 이용한 식초음료(비니거) 만드는 법도 그때 배웠다. 가끔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요즘 뭐해?’소리를 꼭 듣는다. 당연 시골 사람처럼 마당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행사를 지껄여댄다. “고구마 잎줄기 따서 김치 담궜어.” “며칠 전에 들깨를 베서 말려서 들깨를 털었는데 조금 나왔네.” “배추 모종 심었는데 잘 자라야할텐..

수필 2021.12.08

전원주택에서 겨울살이

여름내내 파릇했던 잔디에도 단풍들 듯 누런 빛이 들었다. 누런 빛도 따스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함박눈이 10여센치 오더니 잔디는 오간데 없고 눈밭이 되었다. 잔디뿐 아니라 배추 무를 심었던 텃밭도 눈밭이 되었다. 아무리 추워도 한나절 해가 쫙 팔을 벌려 금빛을 뿌려주면 잔디밭의 눈은 스멀스멀 녹아서 다시 부드러운 잔디밭이 된다. 그늘진 곳만 찬기운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맘에 그늘이 지면 찬기운이 온몸에 퍼져 여유도 없고 배려도 없는 사람이 되기 쉬운 것인가보다. 겨울바람의 찬기운은 집안 곳곳에도 스미어 들어 난방을 아낀다고 조금만 켜놓으면 나처럼 원래 손발이 찬 사람은 발이 시려서 꿈쩍하기 싫어진다. 아파트에 살던 방법과 달리 할 수 밖에 없다. 양말위에 덧버선을 신던가 실내용 슬리퍼를 신던..

수필 2021.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