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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노트는 영혼의 안식처

푸른*들 2022. 12. 29. 14:35

겨울날엔 좀 게을러진다. 커튼사이로 햇살이 바알갛게 스며들어올 때 일어난다. 아쉬울 게 없고 급할 게 없어서일 것이다. 봄날에, 한 여름에, 가을에 부지런을 떨며 일찍 일어나 아침 먹기전에 마당을 둘러보며 열매도 따고 풀도 뽑기도 한 날들의 보상으로 생각한다.

해님도 내 방에 늦게 나타나는데.”

이런 어린애다운 생각을 하다니.

할 일도 적은 때라서 마음이 느긋하고 푸근하다. 그런 게으름을 느긋함으로 포장한다. 겨울날은 그래서 좋다.

한 밤중이나 새벽은 도심지보다 2도 정도는 더 추워서 일어날 엄두도 나지 않는다.

더구나 햇살이 없는 한낮의 겨울날은 왠지 으스스하여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아진다. 집안에만 있자니 쓸쓸하고 번잡한 서울로 외출해보고 싶다. 생각은 잠시 뿐 그런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내 상황에 집중한다.

이런 날엔 외로움도 스며든다. 거실이며 안방, 옷장속에도 외로움의 찌꺼기가 묻어있다.

<말의 서랍>을 쓴 김종원은 외로움을 극복하는 마음 처방법을 알려주었다. ‘언젠가는 더 외로워질텐데하면서 메모를 해둔다. 그동안 늘 남을 먼저 생각하며 살았던 우리들이 아닌가. 그런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에 동감한다. 행복도 기쁨도 내가 먼저가 되어야 한다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 늘 상대를 의식하며 살다보면 우울증에 걸린단다.

김종원의 마음 처방법을 소개해본다.

-매일 자신에게 작은 선물을 준다.

-나만의 장소를 만든다.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다.

-자주 머무는 공간을 사랑한다.

 

창문 너머로 또렷이 보이던 추읍산이 안개낀 듯 희미하게 보인다. 나는 내게 무슨 선물을 줄까 생각한다.

벽난로를 피워야 겠다.’

남편에게 부탁하여 벽난로를 피운다. 농사지어 거뒤들인 고구마를 난로의 굽는 서랍에 넣어놓고 나면 따스함과 달콤함이 나를 위로하리라는 기대감에 흐뭇해진다.

 

벽난로와 군고구마

 

, 따스해.”

식구들이 모두

벽난로 앞으로 모입니다.

 

벽난로는 기분이 좋아

불꽃을 더 빨갛게 피웁니다.

 

달콤한 냄새.”

식구들이 모두

벽난로 앞으로 모입니다.

 

군고구마도 기분이 좋아

온몸을 더 따끈하게 데웁니다.

 

나만의 장소로는 노트를 택하기로 한다. 장소라고 하기에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지만 영혼의 안식처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김종원의 글을 읽으면서 아하, 그렇구나.’ 하고 깨달은 것이다. 하루에 있었던 이야기를 메모하는 것, 읽고 있는 책에서 감동을 주거나 다시 음미하고 싶은 문장이나 내용을 적는 것, 또 하나는 주제를 정해서 쓰는 것, 이렇게 3권을 만들면 좋겠다. 매일 세 가지를 다 하지는 못하지만 한 가지 정도는 정리하며 쓰다듬을 수 있을 것 같다.

써놓은 글들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하고 생각하지만 결과에 마음 두지 말라고 한 것에 용기를 얻었다. 결과에 집착하다보면 비교하는 마음까지 생긴다. 꽃밭 가장자리에 있는 돌들은 모양이 달라도 크기가 달라도 으젓하게 앉아있다. 그처럼 나는 이 보금자리를 지키고 살다보면 생각지 못했던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한다.

겨울 논은 양식의 안식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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