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요는 노래로 부를 수 있는 동시다. 동요를 부를 때마다 어쩜 이렇게 가사에 꼭 맞게 작곡을 했을까 감탄하곤 한다. 나도 언젠가는 가사를 잘 지어서 동요로 부를 수 있게 작곡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을 정도다.
내가 동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오래전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동시를 외워서 발표하는 것을 보고 나서였다. 서툴지라도 습작해본 것을 작은 잡지에 시와 동시를 투고하기도 하였다.
아이들을 키우느라 잊고 지냈던 길을 우연히 ‘아동문예’라는 잡지를 알게 되면서 걷게 되었다. 시보다 동시가 더 내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는 것을 깨닫게 된 이후 시는 접어두고 동시를 써왔다.
4권의 동시집을 내었지만 인정할 만한 문학상도 못 받은 내게 기쁨을 주는 것이 하나 있다. 오래전부터 내가 지은 가사로 동요가 불러지기를 원했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유치원부터 중학생까지 부른다니 그 한 곡일지언정 얼마나 다행인가.
주택가를 걸어가다가 어느 집 마당에 잎이 무성한 나무에서 참새들이 짹짹거리며 노래하다가 우르르 다른 나무로 날아가서 짹짹거리며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지은 것이다. 나무가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제목도 노래하는 나무로 해서 발표하였다. 나중에 작곡가의 권유로 동요로 발표할 때는 ‘나무의 노래’로 바꾸었다.
동시로 나온 작품과 달리 동요로 나오면 새로운 독자를 만나는 느낌이다. 동시를 읽은 느낌은 독자에게 듣는 기회를 갖기가 힘들다. 감상은 독자의 몫으로 돌아가며 작가와 별개의 것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요로 나오면 불러주는 어린이가 있고 새롭게 내가 지은 가사를 음미할 수 있어 피드백이 확실하다.
앞으로의 작가 생활도 마음 가는 대로 순리에 따라야 할 것이다. 순수한 동심을 보여주는 손자가 있어서 동심의 싹도 틔울 수 있지 않을까. 그뿐 아니다. 손자 못지 않은 많은 손주들이 우리 집 마당에 가득하다.
겁많은 진돗개 보미, 피고지는 꽃들, 텃밭의 채소들.
나의 헛헛한 마음을 동심으로 데려다준다.
지금도 스트레스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이 원하는 곳으로 가야한다. 살고 있는 곳을 바꾸는 방법도 있지만 무형의 장소를 바꾸는 방법도 있다. 요가를 원한다면 요가를 해보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그림 그리기를 시도해보는 것도 괜찮다.
나를 도와주는, 동요같은 그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할머니 손주
시골 할머니댁엔
나말고도 손주들이 많아요.
내가 시골에 놀러가면
나하고 놀다가도
꽃밭의 꽃들 살펴보고
할머니가 서울에 오시면
혼자 노는 강아지 산책
걱정하시고
꽃밭의 꽃들
마당의 강아지
서울사는 나보다 더 좋아해요.
그런데
용돈은 나만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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