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의 실학사상을 쉽게 알려주는 거라면 수원화성을 지을 때 고안한 거중기와 정조 임금이 강을 건널 때 만들어 사용한 배다리라고 알고 있다. 부끄럽게도 정약용의 흠흠신서는 제목만 알고 내용은 잘 모른다. 읽어본 적이 없다.
형법서라는 그 책을 은대고전문헌 연구소 자문위원 이강욱은 2년간 작업하여 번역하였다고 한다. 83년 23세때 냉장고 부품공장에서 사고를 당해 의수를 착용하고도 자격증시험에 도전하는 사람이었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평생 매달릴만한 일을 찾은 그에게 다가온 것이 한문과 역사학이었다. 전주서당에서 명심보감과 사서삼경도 배우고 30여년간 한문고전 번역가로서 활동하였다.
보통 직장을 다니다 은퇴한 이후에는 편안히 쉬며 노후를 보내고 싶어한다. 한 일년쯤 쉬다보면 무언가 보람있는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여 봉사싸이트를 기웃거리기도 한다.
내가 보기에 이강욱 위원은 쌓아온 저력을 발휘하여 인생이모작이 아니라 삼모작의 경지에 들어설 자세다. 고교 자퇴한 그가 독학으로 학사학위를 받기도 하였으니 말이다.
고전번역의 길에서 이젠 강의도 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지만 누구나 고전번역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나의 인생이모작은 전원생활을 시작하면서 부터다. 전부터 쓰던 동시를 잊지 않고 가슴에 새겨나가며, 쓰지 않던 수필을 뜨개질 하듯 엮어나가려고 한다. 코바늘로 한 코 한 코 걸어서 뜨다보면 나의 역량 이상의 모습이 작품으로 탄생하지 않을까 기대감이 약간 있다. 나의 글은 내가 쓰는 게 아니고 주변에 영화장면처럼 가득 펼쳐지는 자연이 엮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전원생활을 하려면 소소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풀꽃이 싹이 나서 꽃을 피우는 모습에 놀라워하는 일, 호박돌을 정원에서 이러저리 옮겨 놓아 자리를 잡아가면서도 힘들다 생각안하기, 주변의 집들은 다 잠이 든 시간에 우리 강아지만 짖어대도 무슨 일일까 걱정하면서도 이야기거리를 만드는 일, 거실의 넒은 창밖을 응시하며 조용히 있는 일, 매일 강아지와 산책하며 낙엽 밟는 소리를 듣는 일.
전원주택에서 살려면 몸으로 하는 일을 즐겨야 한다.
시오미 나오키의 <반농반X로 살아가는 법>에서는 브리콜라주를 하라고 한다. 주변에 있는 재료로 없는 것을 만들며 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나는 거실 액자 속 그림을 스스로 만들어서 걸고 작은 창의 커튼도 자투리 천으로 만들어서 달았으니 조금은 시골에 살 자격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들기를 잘 하지는 못하더라도 도전하여 성과를 만들어 내면 된다. 남편과 같이 가림막도 설치하여 비도 안 맞고 아늑한 데크로 새로 탄생시킨 것은 시골살이할 동안에 손꼽히는 역대 대작이 될 것 같다.
고전번역 전문가 이강욱은 정약용의 ‘경세유표’ 번역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힘찬 날개를 펼치고 있는 것처럼 어줍잖지만 내게도 쉼없는 도전의식이 살아있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에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이강욱위원을 보며 오늘 하루도 거실 창을 열고 신선한 바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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