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아래서 시를 읽고 텃밭을 가꿔요

전원에서 살아남기

느티나무하우스 이야기

수필

더 많은 버림을 위한 발자국

푸른*들 2022. 2. 4. 20:33

태풍이 부는 날, 마당의 나무들이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거실 유리창을 통해 본 풍경속의 나무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질러대며 나풀거리는 옷들을 부여잡고 있다. 이파리들은 여자들의 머리카락처럼 흩날린다.

그 중에 정원 구석에 심은 소나무가 태풍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이웃에서 분을 떠서 주신 나무다. 유난히 주지가 길게 뻗어 올라가서 휘청대는 모습이 쓰러질까 조마조마하다. 잘 살지 못하고 죽게 되면 면목도 없고 안타깝기 때문이다. 목이 마를까봐 물도 주기적으로 주고 막걸리도 사다가 부어주었던 나무다.

남편과 나는 바람이 조금 잦아들었을 때 밖으로 나갔다. 키다리 아저씨같은 소나무의 맨 꼭대기 주지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운데로 길게 뻗어올라간 주지를 톱으로 자르고 나니 키가 작아져서 그런지 덜 흔들리는 것 같았다.

 

시월의 어느 날, 또 다른 이웃집에서 소나무를 한 그루 주었다. 일년 전부터 떠가라는 것이었는데 날을 잡았다. 남편과 같이 힘을 합쳐서 땅을 파고 뿌리를 잘라서 옮겨 심었다. 오랫동안 전지를 안한 나무다. 추운 겨울이 곧 다가올 거라서 2월에 하기로 마음 먹었다.

허나 전지를 해본 적도 없고 할 기회도 없었기에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유투브에서 소나무 전지하는 동영상을 여러 개 찾아서 같이 보면서 이치를 깨우쳐갔다. 그런데 어느 영상에서 소나무의 주지는 절대 자르지 말라는 거였다. 혹시 주지를 잘랐을 경우 해결책을 알려 주었다.

무식이 탄로났네.’

나는 동영상을 여러 번 보면서 배웠다.

소나무 분재때 쓰는 알루미늄 철사로 주지가 될 말한 가지 하나를 세우면 된다. 가지에 감아줄 때는 가지에 물이 오르기 전인 겨울에 해야 한다고 하여 철사를 구했다.

동영상에서 본 대로 소나무에 철사를 감아주고나니 소나무가 균형잡힌 모습이 되었다.

소나무에 철사를 감는 경험을 하게 될 줄을 알았으랴. 남의 손을 빌리면 쉽겠지만 그만큼 비용이 드는 거라서 셀프로 해야 한다. 시골살이는 그래서 만만치가 않다.

십년 후엔 우리 집 정원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

 

전지는 보통 2월에 많이 한다. 가느다란 가지와 잎으로 양분이 빠져나가는 걸 막아야 나무의 중심 가지가 굵어진다. 튼튼하게 자라는 나무를 보려면 전지는 필수 요소다. 잔가지를 잘라주어야 우리가 보기에도 아름답고 균형있는 나무가 된다. 과일나무라면 햇빛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전지를 하여야 열매도 크게 열린다.

살아가는 데도 전지 기술이 필요하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는 잔가지들을 쳐내고 목표에 집중해야 한다.

내 삶의 목표는 부끄러운 일이지만 죽을 때까지 글을 써서 책으로 남기거나 블로그에라도 남기는 것이다. 잘 썼다고 알아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글쓰는 일을 놓을 수가 없다.

<가슴 뛰는 삶>을 쓴 비전스쿨 대표 강헌구도 목적을 위해서 가득 찬 쓰레기통은 비우라고 한다.

반 고흐가 목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화가가 되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도 새로운 출발을 위한 버림이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생기는 그날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도 더 많은 버림을 위한 발자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나무를 전지하는 동영상을 보며 나의 삶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내 꿈을 이루기 위한 발자국을 한 발짝 내딛은 것이나 다름없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호미로 시를 쓴다  (0) 2022.02.06
인생 이모작  (0) 2022.02.04
삶의 짐  (0) 2022.02.04
추상 속의 구상-이도선 화가의 작품을 보고  (0) 2022.01.27
평생이라는 말에 대하여  (0) 2021.1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