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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추상 속의 구상-이도선 화가의 작품을 보고

푸른*들 2022. 1. 27. 11:35

이도선미술관 개설 운영

http://www.kahm.kr

( 한국미술역사관/사립미술관/이도선미술관 )

 

구글에서 검색할 때 개인 홈

홈페이지 https://www.dosunleeart.com

 

내가 존경하는 이도선 작가의 작품을 싸이트에서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미술역사관 개관 기념 2021 한류스타작가전 서양화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2021 한국미술진흥원 서양화부문에서는 <최우수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정말 축하드리며 작년에 쓴 글을 올린다.

 

작가는 초등학교 때부터 가졌던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1979년부터 화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고 한다. 학교에서 방학이 되면 작업에 몰두하며 다양한 공모전에 참여하였고,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지 7년이나 방황하다가, 1986년에 창작미술협회 공모전에 처음 입선하면서 본격적인 화가의 꿈을 향한 발걸음을 내 딛었다고 한다. 그동안 다양한 그룹전과 개인전에 200여 차례 참여하며, 화가의 길고 긴 여정을 걸어 온 것이 이제 사십 년이 넘어간다.

그 긴 세월 동안, 힘든 기색 없이 늘 밝은 웃음으로 직장과 작가의 활동을 동시에 하면서 모태신앙의 결정체인 목회자의 길까지 다져왔다고 하니 작가의 열정과 그 여정이 놀랍기만 하다.

 

나는 그림에 대해 잘 모른다. 그림을 보고 또 보며 작가의 표현 의도를 알아내려고 애쓸 뿐이다.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연도별로 정리된 작품을 보니 초기에는 구상과 비구상을 다 해보면서 자신의 표현법을 찾아가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구상쪽으로 이동해간 작품이 점점 많아졌다. 유기적인 비정형적인 추상작품들이었다. 작품들은 또 다른 표현으로 변하여갔다. 직선과 개성있는 색채를 표현하는 추상적인 작품으로 변하여 바뀌어 갔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며 변화를 추구한 결과인 것이다.

2,000년대에 그린 마음속의 풍경시리즈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양평 시골의 모습을 그린 듯 편안하다. 자연 속에서 느끼는 감동을 그대로 보여 준다. 다양한 녹색들이 자신의 존재를 조용히 말하는 산과 들, , 나무들을 대신한다. 추상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작가의 그림은 이해의 여지를 남겨두어 고맙다. 거실에 걸어놓고 오래도록 보고 싶은 그림이다.

 

은퇴한 후 어느 교회에서 목회 일을 한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역시하면서 당연하게 느껴졌다. 왜 당연하게 느껴졌을까? 늘 배려하고 인자한 모습을 봐왔기에 그렇다. 또한 편안한 목소리와 말투로 말씀하시는 모습이 상상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어느 날 전시회를 하신다고 해서 가서 본 작품을 보고 알 수 있었다. ‘마음속의 풍경시리즈에서 어떤 주제로 넘어갈지 궁금했던 게 다 풀렸다. 발표하시는 작품 속에 신앙을 꾹꾹 다져 넣고 있었다.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듯이 붓질을 하며 예수의 발걸음을 그려 넣었다.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의 발걸음과 마을과 바다가 살아 있었다.

최근의 작품들을 본다. 작가의 글도 읽어 보며 예전에 읽었던 성경 장면을 생각하면서 그림을 본다.

성경을 모르면 어떤가. 그림은 그 자체로 내게 다가온다. 단색으로 그리는 화가도 있지만 몇 가지의 다양한 색상이 만나서 넓은 공간을 차지하는 그림도 있다. 어떤 색상으로 했느냐, 어떤 색상을 많이 썼느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니까. 색들이 만나서 온몸으로 달려오는 느낌이 좋으면 내게는 좋은 그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도선 작가의 그림은 편안하고 명상에 잠기게 하는 좋은 그림으로 내게 다가왔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삶에서 만나는 메시지를 담을 때도 그런 것 같다.

 

크고 작은 다각형의 공간에 색을 입힌 작업! ‘예수 수난의 길이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느끼는 내 반응이다. ‘그런데 다각형 안에 작은 네모나 거칠은 탑 같은 것은 무얼 그린 걸까?’ 하는 의문도 해본다. 그 작은 것들이 없다면 다른 다각형들이 의미를 잃을 것 같다. 성경을 알고 나면 좀 이해가 될 것 같다.

거친 다각형이 골고다의 언덕으로, 작은 네모가 창문이거나 마음의 문으로, 나머지 표현들이 마을 사람들과 예수와 제자들로 다가왔다. 붉은 색은 고난의 피로 연상된다. 예수의 수난으로 인해 구원을 얻었다는 교리에서 온 것일까? 붉은 빛이 많이 들어간 그림이다. 작가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성경 구절과 장면을 생각하며 수없이 많은 날을 고뇌했을 것이다.

 

갈릴리바다를 그린 그림은 푸른 바다 빛이 많이 들어갔다. 아무 생각 없이 봐도 바다와 하늘과 배, 마을과 사람이 있는 풍경이다.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바다를 노 저어 가는 제자와 바닷가에서 제자를 낚으시는 예수의 말씀까지도 그려 넣지 않았나 싶다.

나는 바다 빛이 많이 들어간 갈릴리바다 주제의 작품이 편하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다였다가 잔잔한 바다였다가 하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바다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와 닮았다. 바람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느라 힘들어 지칠 때가 있기도 하지만 조개 하나를 줍고도 행복해 할 때도 있다. 우리는 모두 잔잔한 바다를 꿈꾼다.

갈릴리바다 작품에서 보이는 바다는 늘 평화롭고 행복하다. 우리가 잔잔한 바다 같은 세상에서 평화롭게 살고 싶듯 작가도 그런 뜻을 담았으리라 생각한다. 영원한 평안에 이르는 길을 그림을 통해 알려주고 싶을 뿐인 것 같다.

가버나움이라는 작품도 마찬가지로 다양한 다각형과 사실적 표현으로 작품은 이해하기 쉬워서 좋다. 가보지 못한 갈릴리바다와 주변 도시에는 예수의 흔적이 묻혀있을 것이다. 그림을 보면 오랜 시간 묻혀온 이야기들을 찾아 나서고 싶게 만든다. 사람들을 놀라게 한 기적도 보고 싶게 한다.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를 개성 있는 화법으로 정진해온 이도선 작가의 보이지 않는 땀방울에 무한 가치를 둔다. 앞으로도 이도선 작가가 높은 신앙의 수준에서 더 좋은 작품으로 우리에게 굳은 믿음의 모습을 보여 주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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