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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짐

푸른*들 2022. 2. 4. 20:12

철새들이 서식지를 옮길 때는 체력만 키우면 된다. 좀 더 살기좋은 곳으로 갔다오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먼 길을 떠날 때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은 이사를 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한다. 나도 서울에서 양평으로 이사할 계획을 세우면서 부담스러운게 이삿짐이었다. 그 많은 살림살이가 시골집에 다 들어갈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걱정이 짐처럼 어깨에 매달려 한 달 정도 있었다.

누구나 짐을 안고 메고 산다. 감당하기 어려운 살림살이에 치여서 살기도 하고 괜한 걱정거리로 마음의 짐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조금씩 내려놓으니 이삿짐은 점점 줄어 갔다. 이삿짐이 해결되니 걱정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힘들게 이사오고 나니 새로운 걱정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런 걸 다 말해 무엇하랴. 삶은 어차피 짐을 지고 살아야하는 것을. 자식 걱정, 남편 걱정, 취직 걱정. 이 모든 것들을 완전히 떠나보낼 때는 언제일까? 그 답은 뻔한 걸 알면서도 넋두리 한다.

자신이 지고 가는 짐이 무거운 줄 알고 남의 것과 바꿔 매어보니 더 무거웠다는 말처럼 짐의 종류가 다를 뿐이다. 작은 문제가 해결되었나 싶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신부의 고생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걷는게 체질적으로 맞지 않는 평발의 신부는 산티아고에 꽂혀서 트랙킹을 시작한다. 신자들의 소원이 적혀있는 무거운 편지와 자신의 짐을 메고서. 발에 물집이 생기고 발톱이 두 개나 빠져나가는 고통에 투정도 부리고 배낭의 무게를 줄이고자 물도 마시지 않는다.

어느 날 신부의 마음 속에 하느님이 주신 메시지는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다.’ 였다고 한다. 고통을 주신 이유를 깨닫게 된다. 빨갛게 떠오르는 해를 넋 놓고 바라보며 희열을 느낀다. 아무렇게나 메고 다니던 배낭을 추슬러 어깨끈을 잡아당겨 보니 등에 착 붙는다. 그렇게 무겁던 배낭이 무겁지 않았다는 것이다. 투정만 부리니 가방을 잘 메고 다닐 생각조차 안한 것이다.

왜 내게 이렇게 해결하기 힘든 짐을 주시냐며 짜증을 내느라 짐을 바르게 잘 짊어지려 애쓰지 않았다.

 

가방은 용도에 따라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가방을 늘어놓고 누가 더 이쁘냐, 누가 더 필요하냐고 물으면 말을 할 수가 없다. 만약 가방에 걱정거리를 넣어 버린다고 하면 또 말이 달라질 것이다. 큰 가방엔 큰 걱정, 작은 가방엔 작은 걱정을 넣는다고 하면 큰 가방부터 버리게 될 것이다.

걱정에 크고 작은 게 있을까?

살아가면서 뗄레야 뗄 수 없는 것.’

어차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잘 다독이면서 짊어지고 가야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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