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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호미로 시를 쓴다

푸른*들 2022. 2. 6. 19:50

전원주택에 이사온 첫해에는 풀도 많이 안 생겨 그럭저럭 살만했다. 삼년째 되다보니 풀도 자리를 잡았는지 뽑고 나면 어느 새 씨뿌린 듯 작은 싹들이 빽빽하게 솟아나 있다.

남편은 텃밭, 나는 꽃밭. 이것이 관리구역이었는데 구역을 지키기가 어렵다. 바쁜 일로 서울에 가거나 병원 나들이가 있거나 여행 일정으로 관리 기한을 넘긴 경우다.

 

텃밭과 꽃밭을 한 바퀴 둘러본 후 각자 자기 구역의 일에 몰두한다. 먼저 끝낸 사람은 다른 구역의 일에 손을 보탠다. 텃밭의 일을 끝내고 온 남편이 내가 풀뽑는 걸 보다가 호미를 들고 거든다. 물론 나도 텃밭으로 건너가 풀뽑는 것뿐아니라 열린 가지 호박 오이를 거둬서 주면 내가 받아오기도 하고 따기도 한다.

보다 못해 나선 것이다. 비온 후엔 더하다. 옥수수 심어 놓은 곳엔 옥수수를 닮은 풀들이 자라고 봉숭아를 심은 곳엔 봉숭아를 닮은 풀들이 자란다. 뽑아야 한다고 생각한 풀들이 어쩜 그렇게 예쁜지 감탄할 뿐이다. 꽃에 대해 잘 모르는 남편은 어떤 때는 꽃을 뽑고 풀을 남겨주는 선심을 쓰기도 하니 말이다.

 

나는 내가 시쓰는 사람이라는 것도 잊고 호미질에 목숨을 걸 듯 비오듯하는 땀을 닦아내며 호미질을 한다. 왼손으로는 풀을 잡아 뽑아낸다. 한참 하고 나면 이번엔 호미가 왼손으로 옮겨지고 오른 손으로 풀을 뽑는다.

내가 왼손질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오래전 컴퓨터 손목 터널 증후군으로 오른손에 깁스대용 손가락없는 장갑을 끼고 있어서였다. 왼손으로 밥을 먹으려고 애쓰다보니 젓가락질까지 하게 되었다.

두 손의 관절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과부하가 걸릴지 않게 교대로 해야 한다. 조금만 조금만 하던 게 점점 범위는 넓어지고 풀들이 써놓은 시를 내가 캐내는 거였다.

 

주객이 전도된 꽃밭이 되기 전에 내가 부지런히 시를 써야 한다. 그렇게 나는 호미로 시를 쓴다. 꽃밭에다가, 텃밭에도. 내가 쓴 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일을 끝내고 나서 바라보면 내가 쓴 시들이 멋진 장면을 연출하고 교정을 본 버려야 할 철자들이 여기 저기 한무더기씩 거름이 되기 위해 기다리고 있게 된다.

옥수수를 닮은 풀들이 꽃밭으로도 나들이를 하여 빼곡이 자라는 걸 어찌하랴. 나는 용감해져야 했다. 텃밭으로 가서도 텃밭 뒤에 울타리로 심어놓은 연산홍까지 위협받는 거 같아서 내 손가락 관절을 돌볼 새 없이 시쓰는 일에 빠져들곤 한다.

유기농 환경주의자들이 내 말을 듣고는 무슨 말을 할까?

 

내 꽃밭은 이웃집의 관심과 배려로 더 힘차고 풍성하게 되어간다. 이웃집에서 놀러 오기도 하고 우리가 놀러 가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야기 끝에 메리골드와 꽃양귀비 모종을 얻어다 심은 적도 있다. 메리골드는 울타리를 화려하게 꾸며주었다. 옮겨심으면 몸살을 앓는 양귀비가 자리를 잡게될 때까지 살펴보았다. 그 꽃들이 잘 자라도록 나는 얼마나 많은 호미질을 했던가. 그렇게 나의 호미질은 멋진 꽃들이 함께 하는 시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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