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아래서 시를 읽고 텃밭을 가꿔요

전원에서 살아남기

느티나무하우스 이야기

수필

양평 전원주택에서 살아남기-겨울살이

푸른*들 2020. 2. 28. 16:19

여름내내 파릇했던 잔디에도 단풍들 듯 누런 빛이 들었다. 누런 빛도 따스함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함박눈이 10여센치 오더니 잔디는 오간데 없고 눈밭이 되었다. 잔디뿐 아니라 배추 무를 심었던 텃밭도 눈밭이 되었다. 아무리 추워도 한나절 해가 쫙 팔을 벌려 금빛을 뿌려주면 잔디밭의 눈은 스멀스멀 녹아서 다시 부드러운 잔디밭이 되었다. 그늘진 곳만 찬기운을 머금고 있다.

그래서 사람의 맘에 그늘이 지면 찬기운이 온몸에 퍼져 여유도 없고 배려도 없는 사람이 되기 쉬운 것인가보다.

 

겨울바람의 찬기운은 집안 곳곳에도 스미어 들어 난방을 아낀다고 조금만 켜놓으면 나처럼 원래 손발이 찬 사람은 발이 시려서 꿈쩍하기 싫어진다. 아파트에 살던 방법과 달리 할 수 밖에 없다. 양말위에 덧버선을 신던가 실내용 슬리퍼를 신던가 한다. 벽난로에 불을 지피면 그래도 따뜻하게 지낼 수 있다. 실내는 따뜻한데 장작을 옮기거나 마당에 강아지 밥을 갖다주거나 하면서 알게 모르게 딸려들어온 먼지와 낙업 지푸라기 같은 것들이 곳곳에 숨어있다. 그것들은 내 양말이나 바지에 붙어 다니기 일쑤니 덧버선이 난방으로도 필요하지만 은연중 바닥 청소용으로도 필요하다.


서울에 살 때 입던 홈드레스는 고이 간직하던지 해야 한다. 간편한 옷차림으로 언제나 쉽게 밖에 나갈 수 있어야 하고 나갔을 때 춥지 않아야 한다. 수시로 대걸레로 물걸레 청소를 해야 먼지도 덜 난다. 거실 밖 풍경속에 산과 나무가 늘 보이지만 화분 몇 개는 키워야 습도 조절도 되고 녹색이 주는 안정감이 있다.

 

얼마전엔 남편 잠옷을 만들었다. 잠옷은 있는데 말이다. 여름엔 면으로 된 잠옷을 입던 남편이 겨울이 되면서 차가워서인지 입지를 않는다. 마침 친구가 전원생활에 필요할지 모른다고 공장을 정리하면서 두루마리 옷감을 주었다. 신축성이 있으면서 따스하고 감촉도 부드러운 것이다. 재봉틀도 없는데 나는 용기를 내어 잠옷을 만들어 보았다. 티셔츠는 단순하게 재단하고 목은 라운드로 하고 꿰맨 부분이 풀어지지 않게 감침질하고 바지허리에는 넓은 고무줄을 넣었다. 남편이 입어보니 팔이 길어서 잘라내기도 하니 만드는데 사나흘 걸린 것 같다. 남편도 잠옷이니 입을만하다며 내 수고를 알아주는 제스쳐를 한다.

그런 맛에 조금씩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간다. 아는 체도 하지 않으면 할 맛이 안 나는 건 누구나 겪는 일일게다.

 

친구가 준 옷감 중에 빨간 폴리에스텔 천이 있어서 랩스커트도 만들어 보았다. 보자기에 기다란 끈을 양쪽에 단 디자인인 만큼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면적이 커서 둘레를 접어서 단을 만들고 허리부분에 끈을 다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끈도 생각보다 길게 해서 허리를 두 바퀴 돌려서 묶을 수 있었다. 내가 입은 걸 보고 며느리는 셰프같다며 웃었다.

하여튼 두르고 나면 스커트 입은 것처럼 느껴지고 보온도 되니 일석이조다.  시골에 살면 버릴 게 없다고 하더니 참말이다.


나는 이렇게 작은 것이라도 만들고 나면 만족하고 기뻐한다.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를 쓴 김혜남 정신분석 전문의도 '무언가 작은 것이라도 성취하면 그 기쁨을 충분히 누리라'고 하였다. 그러다 보면 긍정적으로 변하고 잠재력도 꺼내질거라고 했다.  긍정적인 사람에게 행복이 다가온다. 그러면 성공도 따라온다.

내가 바라는 성공은 전원주택에서 살아남기인 만큼 만족하고 기뻐하면 성공할 거라 믿는다. 행복한 사람이 성공한다고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