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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에서 살아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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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양평 전원주택에서 살아남기-마음 쏟기

푸른*들 2020. 5. 15. 11:44

누구나 그렇겠지만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은 추억은 생각만해도 가슴 저리고 두근거린다. 장면마다 만났던 사람도 그립고, 사람들과 나누던 말들중에 떠오르는 말들이 지금도 심장에 살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한 추억의 하나는 바로 아들의 결혼식이다. 많은 친구들과 친지들이 축하해주고 밝게 미소짓는 아들과 며느리를 보니 어찌 행복하지 않으랴. 결혼식을 하게되기까지의 과정이 행복을 더 진하게 더해주었지 않나 싶다. 사돈내외와의 화기애애한 만남, 아들과 한복을 맞추러갔던 일들, 주방도구를 사러 같이 갔던 시간들.

결혼을 한 후에도 아들 며느리는 불편한 기색없이 편안하게 오간다. 손주를 낳은 이후에는 손주의 재롱영상을 가끔씩 보내주어서 할머니로서의 기쁨까지 안겨준다.

 

추억의 물건중에 아들 결혼식때 해입었던 한복이 있다. 이제 더는 입을 수 없는 옷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그냥 두자니 죽을 때까지 처리하지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 아들이 결혼할 당시 나는 위암에 걸려서 수술한지 1년후라서 체중이 많이 줄었다. 그러니 한복도 처녀때의 날씬한 몸매처럼 날렵한 차림이다.

재활용하는 물건수거함에 넣을까도 생각해 보았지만 누군가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

나는 다른 용도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면 약간의 해체가 필요하다. 물론 바느질하느라 애쓴 분에게는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쩔 수 없다. 그대신 상자속에서 잠재우지 않고 밖으로 나와 살라고 할 작정이다.

 

전원생활을 하니 창고가 넓어야 한다. 창고에 이것저것 분류하기도 힘든 물건들이 자꾸 쌓여간다. 잡초 뽑느라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쓰던 파라핀 치료기, 선풍기, 잔디깎는 기계, 강아지 사료, 여행용가방, 여분의 소금포대, 신문, 건조기 그리고 자잘구레한 것들이 창고에서 산다.

그러다보니 아직 창고에 보내지 못한 것이 있다. 먼지가 앉는 것을 방지하려고 천을 덮어두었는데 어두운 색이라 바꾸고 싶다.

거실에 앉아서 밖을 내다보니 전에 심은 수선화가 퍼져서 십여송이의 노란 꽃이 피었다. 밝고 화사해서 늘씬한 초록잎과 어울린다. 우리 집안도 그렇게 어두운 색을 몰아내고 싶다.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덮었던 천을 다른 것으로 바꾸어야 겠다는 것이다.

그 대상이 결혼식에 입었던 한복이라니. 정말 나는 나를 못말리겠다.

 

내가 왜 이런 것에 마음을 쏟을까? 사이먼 사이넥이 지은 책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라고 한다. ‘를 찾은 다음 어떻게’, ‘무엇을찾아가다보면 사업이든 행동이든 성공포인트가 나오게 된다. 특히 는 공감이 필수다.

그 공식을 나의 행동과 결부시켜보면

’-추억의 안 쓰는 물건을 새롭고 쓸모있게 간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찾는 작업자체를 즐기려고

어떻게’-리싸이클링을 하고 싶다.

무엇을’-한복

잘 연결시켰는지는 모르지만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니 내 행동에 의미가 입혀졌다.

커튼을 만들까 하다가 커튼은 맞지 않는 색이라서 포기하고 방향을 틀었다. 덮개로. 덮개는 쓰다가 다시 다른 용도로 써도되니까.

그러다가 덮개가 너무 커서 조금 잘라서 다른 것을 만들어 보았다. 밭에 나가 일하다 보면 모자를 벗었을 때 머리가 부스스해진다. 그 머리를 감추기 위해 쓸 두건 비슷한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완성한 것은 내 작은 머리에 대강 맞았다.

 

<앞 면>


<뒷 면>

요즘에 남편이 다용도로 쓰는 것을 가르쳐준게 있다. 안경이 여기 저기 돌아다녀서 찾다가 애먹은 적이 있은 남편은 한군데에 안경을 몰아놓기 위해서 삼각안경집을 사용한다. 텃밭에 나가려면 썬글라스, 신문 볼때는 돋보기, 외출할 때는 다촛점렌즈안경. 그것들을 삼각안경집에 쪼르르 걸쳐놓으면 쉽게 찾고 무조건 그곳에 걸쳐놓으니 아무데나 놓던 습관을 버렸다.

주방도구도 한 가지 용도로 쓰는 것은 잘 안 팔린다고 한다. 다용도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나도 그렇다. 콜라병따개가 와인병따개도 되고 의자가 화분받침도 되고 얼마나 좋은가. 오죽허면 집설계도에 다용도실이 있을까. 세탁기도 놓고 약수터에서 받아온 물통도 놓고. 냉장고에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잠시 둔다.

다용도실에 놓으면 될텐데. 어쩌랴. 그곳에도 다른 놈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둘 수가 없다. 전원생활을 한답시고 시골에 왔는데 좁게 살려했던 내 생각과 달리 점점 물건을 둘 곳이 없어진다.

 

그런데 한복의 변신한 모습, 낯설다. 애써서 어깨끈을 떼어내고 뜯어진 곳을 홈질로 마무리했는데.

아들 며느리의 멋진 모습, 나의 행복했던 순간들이 떠올려지기는 하는데 생각보다 애착이 덜 간다. 하여튼 한복을 두었던 커다란 박스 하나는 처리했다. 이렇게 해서 사랑하는 물건과의 이별을 쉽게 할 수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