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출근을 할 때 차를 몰고 다닌 적이 있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출근준비로 바빴던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운전대를 잡는다. 물론 얼마 못 가서 출근시각에 맞춰갈지, 출근해서 할 일이라든지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지만.
그 때 아무 생각없이 가다보면 어제 갔던 그 길을 똑같이 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가야하니 가던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일이기는 하다.
그 후로 일찍 길을 나선 날엔 주행 코스를 변경하여 보았다. 익숙치 않는 길이라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조심해서 몰게 된다. 퇴근시간도 마찬가지로 여러 방법의 길로 해서 집에 오곤 했다. 알고 보니 그런 나의 시도가 여러 가지로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았다.
등산을 할 때도 그 방식이 통한다.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코스를 달리하면 지루하지 않고 깨어있는 느낌을 주는 것 같다. 그렇듯 나는 산책을 할 때도 다양한 길을 찾아 본다.
우리 집을 기준으로 아랫길, 윗길, 옆길, 차를 타고 나가는 방법까지 말이다. 옆길로 가면 효자마을비가 있는 언덕을 지나 옆 마을로 가는 길이 나온다. 그 길엔 사납게 짖는 개도 있고 2층집 전체를 노란색으로 칠해서 눈에 띄는 집도 있다. 똑 똑 두드려 그 집에 한 번 들어가 보고 싶기도 하다.
정원에 나무를 단정하게 띄엄띄엄 심고 잔디가 아름다운 집도 들여다보며 걷는다. 높은 축대가 있어 계단으로 올라가는 전망좋은 집을 지나면 강가에 게스트하우스도 보이고 장작을 차곡차곡 벽면에 쌓아놓은 집, 주차장에 라인을 그려 도심지의 집처럼 깔끔한 집도 보인다. 어딜가나 울타리는 낮아서 마당이 보이는 집들이 내게 호기심을 자극한다.
윗길로 가면서 보이는 어떤 집은 어린 소나무부터 커다란 소나무까지 정성들여 전지하며 키운다. 꽃과 나무들이 마당에 다소곳이 줄서있는 모습에 주인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어제 갔던 길을 피해 오늘은 어느 길로 가볼까 궁리를 해보며 길을 나서본다. 삶은 길을 걷는 것과 같다. 마냥 예쁜 길만 있는 것도 아니고 마냥 보기 흉한 길만 있는 것도 아니다.
길 건너 다른 마을로 들어서면 새로 지은 집들과 오래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손잡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름 모르는 풀과 꽃이 피어있는 농수로 옆으로 걷는 것도 좋다.
집집마다의 얼굴은 어쩜 그리도 다 다를까. 우리들의 얼굴과 입고 있는 옷이 다 다르듯이 집들과 집터, 울타리안의 꽃과 나무, 풀, 채소가 자라는 모습이 달라서 산책길은 지루하지 않다.
강하면에 가면 공원을 습지에 있는 나무데크와 연결하여 한 바퀴 돌아오게 만든 곳도 있다. 특별하지는 않지만 처음 가보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잠자는 뇌를 깨우는 것같다. 길이 어떻게 전개될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가는 길도 산책길이다. 날마다 달라지는 소풍길이다. 천상병시인의 소풍처럼 말이다. 산책길에 보는 것들이 내게 작은 즐거움과 기쁨, 놀라움을 주는 것만으로 만족한다. 공짜로 얻은 기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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