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열병을 앓고 있다. 몰아치는 태풍을 피해가기 어려운 것처럼 비껴가지 못하고 코로나라고 하는 태풍의 핵 속에 갇힌 소중한 분이 계시다. 바로 나와 남편의 형님 내외분이신 김종양 박상원 선교사 부부시다.
변변한 병실과 약품도 없는 아프리카에서 코로나를 앓고 계시다. 코로나로 먹을 게 없어 고통받는 현지인들을 위해 사랑의 식량 나누기를 하다가 걸리신 것 같다.
선교활동중 못 먹어서 폐병도 걸리고 말라리아에 걸리기도 했고 심장 수술도 하여 심장약도 복용중이시니 기저질환자시다. 지금도 일년에 한번 한국을 방문하여 약처방도 받고 건강체크를 하신다. 한국에 있다면 한국의료진의 우수성을 누구나 인정하는 바 걱정이 덜 한데 아프리카에 계시니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다. 두 분도 약을 먹으며 자택에서 기도하며 치료중이다. 병원에 갈 수 없는 현실이다.
김 선교사는 어떻게 아프리카로 가셨을까?
독일에서 연수중 기독교인이 된 후 선교사의 길로 들어선다. 1985년 아프리카에 파송되어 아프리카대륙선교회를 설립한다. 아프리카 8개국에 600여개의 교회 개척, 162개의 교회를 건축하였다. 교회뿐 아니라 초등학교 고등학교 신학교도 세워 기술교육 신앙교육을 하고 있다.
2013년에는 에스와티니 기독대학을 세우고 의과대학 개강준비하여 2020년 9월에 개강하려 했으나 코로나로 어려운 실정인 것 같다. 의과대학을 세우게 된 계기도 의료시설도 시원찮고 의사도 별로 없는 나라에 에이즈환자가 많기 때문이었다.
34년의 재정적 정신적 어려움을 이겨내고 신앙안에서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큰 일을 해오신 것을 보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가 외국의 해외선교사를 통해 받은 만큼 돌려주는 입장이 된 것도 선교사님이어서 더욱 가능한 일이 된 것 같다. 곳간에 돈이 많아도 쓸 줄 모르면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김 선교사는 연세대에서 2009년 언더우드상을 해외선교 부문에서 받았다. 한국 국적이 아님에도 상을 주었다. 오로지 선교활동만을 위해서 에스와티니(구 스와질랜드)로 귀화하였다. 그렇지만 한국인임을 자랑스러워하신다.
65세 이후에 이중국적 신청이 가능하다고 해서 전에 신청했더니 에스와티니시민권자라서 어렵다는 정부의 답을 듣고 이제는 포기하고 있다고 한다. 영리를 목적으로 귀화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한국에 오실 때마다 의료보험이 안 돼서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한국의 슈바이쳐 김종양 선교사! 자랑스러운 한국인을 우리 국민들에게 알리는 입장에서 이중국적을 허락해야하지 않을까?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려서 청원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동의해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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