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거실에서 부엌까지 기지개켜듯 키를 키운 아침나절, 덜그덕거리는 설거지 소리만 빼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가 많다. 햇살이 좀 따가워지는 여름날 한낮이면 더욱 더 고요하고 할 일마져 없는 한적함이 몰려온다.
방충망 틈새로 살랑이는 바람이 불어오는 저녁나절에는 밥을 먹고난 강아지와 개들의 활동시간이 다가온다는 신호처럼 짖어대는 소리로 마을을 깨운다. 더구나 개 다섯 마리 키우는 집의 개 짖는 소리는 저녁 산책나가는 개들이 있는 한 멈출 수가 없다. 그 소리도 이젠 귀에 익어서 아무렇지도 않다. 따라서 짖는 우리 집 개의 소리가 가까워서 더 소리가 클 뿐이다.
그리곤 저녁 여덟시경이면 잠잠해진다. 다시 고요가 찾아온 것이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을 쓴 작가의 말처럼 나도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고요를 즐기려고 시도해본다. 그런데 그게 쉽지가 않다. 제일 거치장스러운 텔레비전을 끄고 있을라치면 어느 새 거실 바닥 구석의 먼지가 보여서 닦고는 다시 의자에 앉는다. 스마트폰이 궁금해서 카카오톡을 열어보고 빨간 숫자가 있는 것에 즉각 반응을 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면 잠자리에 누워야 할 것 같아 옷을 갈아입고 눕는다. 새벽 4시에 하는 노년을 위한 건강365 프로그램에서 알려준 운동을 누워서 하게 된다. 두 발 두 손을 들어올려서 5분간 털기다. 중간중간에 자전거바퀴돌리기도 하다보면 5분정도 지나서 잠을 청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다. 명상하라고 가만히 앉아있을 때의 그 지루함이다.
결국 잠이 들어 새벽 5시경이면 잠이 깬다. 잠은 깼는데 그냥 누워있으니 온갖 생각이 물결친다. 온갖 장면이 떠오른다. 오늘 할 일을 생각해본다.
한낮에 밀려오던 고요로움이 새벽에는 또다른 느낌으로 온다. 어둠속에서 살금살금 다가오는데 머리 속의 잡념으로 고요로움이 사라지는 것이다.
오히려 라디오를 틀어서 방송을 듣는 게 낫다 싶어 라디오를 듣는다.
3년간 들었던 방송이 있다. 농어민들을 위한 방송이었다. 때맞춰 텃밭을 관리하는 요령, 씨뿌리는 방법, 고전이야기, 입말 음식안내, 귀농귀촌 귀어한 사람들의 경험담들이 매일 다채롭게 방송되어 심심치 않았다. 듣다가 잠이 오면 잠이 들기도 하면서.
전원생활을 하면서 알아야하는 것들을 차근차근 알려주어서 매우 소중한 프로라고 여기면서 들었다. 그날 알게된 내용을 꼭 실천해보려고 기회도 엿보았다. 기회라는 게 알맞은 때가 되겠지만.
고추가 더 이상 익어가지 않을 때쯤 배추를 심게 되는데 고춧대를 뽑지 말고 그 밑에 배추 모종을 심으라는 말, 뜨거운 햇살이 지나간 후엔 고춧대를 자르라는 말도.
언젠가는 수원씨앗도서관 관장님이 토종씨앗을 나눔한다는 말에 신청해서 고추, 상추, 토마토, 잎무, 참외 씨앗을 받기도 하였다.
친구들은 어떻게 5시에 일어나냐고 한다. 일찍 자는 이유도 있지만 남편이 일찍 일어나는 이유도 있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 방송을 켜니 따라서 잠이 깰 때가 많다.
방송을 들으며 새벽을 여니 전원생활하는 우리에겐 딱 맞는다. 밤새 안녕한지 텃밭도 둘러보고 꽃밭의 꽃도 감상하고 풀도 뽑는다. 언제나 반갑다고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 밥도 챙겨주고 들어온다.
아무 말 없이 장화신고 호미들고 땅을 밟으며 일을 한다. 새 아침의 고요가 시작한다. 고요롭기는 한데 머릿속은 시끌시끌하다. 수많은 대화가 오간다.
‘깻잎이 누렇게 되었네. 너는 거름이 필요하겠다.’
‘상추가 옆으로 쓰러졌네. 너는 뜯어서 쌈싸먹어야겠다.’
‘해당화가 너무 자라서 남천이 기우뚱하네. 해당화 너는 좀 잘라야겠다.’
‘풀이 언제 또 이렇게 자랐냐? 호미질하기 힘드네. 비가 오면 좀 뽑기 쉬운데.’
하여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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