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아래서 시를 읽고 텃밭을 가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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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티나무하우스 이야기

수필

명상의 계절

푸른*들 2020. 12. 16. 21:46

겨울은 명상의 계절이다. 몸과 마음이 침체의 길로 가는 입구인 듯 하지만 텃밭의 식물들을 보면 그렇지도 않다.

물론 여름 내내 생기있게 자라며 열매를 안겨주던 토마토, 참외, 가지, 오이들의 존재를 잊을 수는 없다. 이랑마다 영광의 시간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잘린 고춧대, 마른 옥수수대, 진한 향기로 화려하게 빈 공간을 채워주던 메리골드 꽃까지.

날씨가 추워지니 느티나무의 잎들이 수북히 쌓여간다. 가을을 보내고나니 집안에 벽난로가 바쁜 때가 왔다.

 

내가 꼼짝않고 집안에서 털실 수세미를 뜨고 벽난로의 따스한 온기를 즐기는 동안에도 겨울 텃밭에는 사라지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것들이 있다.

땅 바닥에 납작 엎드린 시금치가 추위를 견디어 내고 있음을 본다. 비닐도 덮지 않은 곳에서 조금씩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다. 땅 위로는 오를 수 없다는 겸손의 미덕을 보인 것일까.

까만 비닐을 덮고 구멍마다 심어놓은 마늘도 겨울을 이기고 봄이 다가오면서 파릇한 촉을 내민다. 얼어죽지 말라고 짚을 얻어다 덮어놓았으니 조금은 안심을 하면서 지낸 겨울이다. 그 옆에 심심하지 않게 친구가 되어준 양파도 심을 때의 모습대로 초록 바늘을 짚 속에 숨기고 같이 겨울을 이겨내었다.

 

대장군을 연상케하는 대파는 텃밭의 든든한 파수꾼이다. 겉잎들이 좀 시들거나 얼어버린 듯 보여도 뽑아보면 땅속 뿌리들은 근육질이다. 손으로 그냥 뽑아지질 않는다. 땅을 어찌나 꽉 움켜쥐고 있던지 놀라울 뿐이다.

겨우내 나의 근육은 점점 빠져가는데 대파는 오히려 튼튼한 매력을 보인다. 눈이 오는 겨울을 견디어 내는 것뿐 아니라 단단하고 굵은 밑둥을 키운다.

대파 못지않게 텃밭을 지키는 놈이 또 있다. 대파처럼 튼튼해 보이지는 않아도 날씬한 몸매로 가냘프게 줄지어 있다. 바로 쪽파다. 쪽파도 밑둥을 키우고 있어서인지 뽑아보면 날씬한 이파리와 달리 밑둥은 크고 단단하며 하얀 실뿌리들이 땅을 꽉 움켜쥐고서 겨울을 난다.

 

그러고 보면 겨울을 이겨내고 텃밭에 남아있는 식물이 생각보다 많다. 나의 농한기에 식물들중에는 땅속으로 비집고 들어가며 추위를 이겨내며 바쁜 날을 보낸다.

향기가 독특한 방풍나물, 뿌리를 약재로 쓰는 당귀도 겨울 텃밭에 살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꽃밭에 숨어있던 딸기도 봄을 맞이하여 파릇하고 귀여운 이파리를 잔뜩 깔아놓는다. 텃밭에서 꽃밭으로 이사를 했어도 꿋꿋하게 잘 살아온 녀석이다. 올해도 꽃밭에서 딸기 몇 바구니는 따서 먹게 될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채소들만 나열했을 뿐 사실 식물중에 잡초라 불리우는 것들은 겨울을 이겨내는 것도 많고 심지 않아도 봄이 되면 초록 이파리를 앙증맞게 내민다. 잔디보다 먼저 나와서 군데군데 초록이파리 무늬를 한 잔디가 탄생한다. 잔디뽑는 도구로 뽑아내면서도 그들의 생명력에 가슴 뭉클할 때가 있다.

 

식물들의 끈기를 텃밭에서 보면서 나는 잃어버린 끈기를 다시 찾고 싶은 생각에 사소한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려 하게 되었다. ‘힘들다 힘들다하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길이 열리리라는 것처럼. ‘아프다 아프다하면서 기운을 잃어가던 내게 활력을 준 것이 텃밭이다.

아마도 살 맛을 잃어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게 텃밭이 될 거라 믿는다. 텃밭은 자연의 한 부분이며 가장 낮은 자세로 씩씩하게 사는 모습이니까. 텃밭이 품은 모든 식물들이 그런 모습을 보여준다.

텃밭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않아도 된다. 근처의 공원이나 산에 가보면 겨울인데도 파릇파릇 살아있는 풀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봄이 다가오기 시작하면 겨우내 안 보이던 풀이며 싹들이 보인다. 그들의 생명력을 마음 깊이 바라보면 어떤 메시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똑같은 메시지는 아닐 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