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날보다 일찍 아침을 먹었다. 밖을 내다보니 꽃밭에 풀들이 두 뼘이상 자란 게 보인다. 주섬주섬 작업복을 입고 모자를 찾아 쓰고 나갔다.
밖에 몇 번 쓰다가 던져 놓은 장갑을 끼고 호미와 풀뽑는 기구를 들고 삐죽히 연산홍 나무 위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풀을 찾아 축대쪽으로 갔다.
처음 시작할 때는 ‘복숭아나무에서 소나무 있는 곳까지만 뽑아줘야지.’했는데 조금 더 조금 더 하며 뽑다보니 가시오갈피있는 곳까지 왔다. 허리를 펴고 시계를 보니 어느 새 한 시간이 흘렀다. 목에 두른 수건이 다 젖었다.
남편도 내가 나오자마자 텃밭으로 가서 열심히 수행중이었다.
우리는 풀뽑기를 ‘수행한다’고 한다.
‘이 놈 때문에 아직 어린 연산홍이 잘 크지 않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면 잡초는 모두 다 뽑아야 한다.
‘얘는 어찌 이파리가 앙증맞고 꽃도 작은데 예쁘지?’하고 생각하면 뽑을 수가 없다.
‘하필 이런 곳에서 싹을 틔워 자랄 게 뭐니?’하면서 살고 죽는 것은 운명이니 어쩔 수 없다는 투로 부지런히 풀을 뽑는다.
그러니 인생무상을 느끼며 수행에 몰입하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데크에 시계가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다보면 한 시간만 하고 들어가서 커피마시며 휴식을 취하려던 걸 놓치기 일쑤였다. 데크앞 벽에 시계를 사다 걸고나서는 시간관리가 수월해졌다.
풀은 매일매일 우리의 생활을 타이트하게 하고 긴장감을 준다. 환경이 척박한 곳에서도 쑥쑥 잘도 자라는 풀을 보며 놀라움을 갖는다. 하루라도 풀을 등한시하면 더 힘든 일이 생길 것은 뻔하다.
나이가 드니 병원가는 일도 학교가듯 한다. 남편이 가는 병원에 별 일 없으면 동행하는 게 습관이 되어 바쁜 날을 보낸다. 그래서 어떤 때는 일주일이상 풀을 뽑지 못할 때도 있다. 골창에 수북히 자란 풀들을 뽑다 말고 남편이 한 마디 한다.
“허리가 아파서 호미 가지고 안되겠어.”
“서서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있지. ”
남편이 이끄는 대로 비료나 자재를 파는 농협에 가서 기다란 나무자루에 세모모양이 달린 기구를 사왔다. 이것도 호미의 일종이라고 한다.
서서 일하니까 훨씬 편하다며 역시 농기구를 잘 써야 한다고 만족해 했다. 농기구는 그거 하나만 가지고는 안 되는 건 뻔한데도.
비닐 멀칭한 곳에 고구마를 심을 때 구멍을 내는 건 호미로 한다. 호미를 아무리 찾아도 없어서 다른 일들을 마무리하고 호미를 사러갔다. 호미를 사려고 둘러보는 순간 지난 번에 다른 가게에서 산 긴자루호미와 비슷한 게 보였다.
풀을 긁어내며 뽑는 것인데 쇠자루로 되어있고 세모모양 부분이 조금 작고 각도가 달랐다.
“이게 좋겠는 걸. 해보니까 지난 번 것은 싹싹 안 긁어져. 힘을 덜 받아.”
나는 그러냐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호미사러 갔다가 똑같은 용도의 농기구를 또 사게 되었다. 물론 일반 호미도 같이 말이다.
하나 둘 늘어난 농기구가 마당 한 켠에 쌓여서 지나다니다가 잘못 발에 걸리기도 한다. 날카로운 삼지창같은 쇠스랑은 특히 더 조심해야 한다.
시골에 와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며 땀을 흘려 일하는데 버릴 수 없는 욕심 한 가지가 생겼으니 바로 농기구다.
허긴 전원생활에 쓸모없는 물건은 없다지 않는가.
창고에는 또 다른 것들로 가득찼다. 농기구를 어찌 관리해야 할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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