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가 없는데요
몇 년전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친정어머니는 내게 평생의 울타리였다. 내가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는데 키우기 힘든 외손주를 돌봐주셨다. 나를 키우고 학교 보내면서 생계를 책임지셨던 분에게 나는 손주까지 맡겼다.
그랬던 분이 돌아가시고 난 후 내겐 무거운 후회로 한동안 허전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살아계실 때는 내가 노인네를 돌본다는 생각이었지만 사실은 어머니가 나의 울타리역할을 알게 모르게 하고 계셨던 거였다.
울타리는 자기 영역을 알려주어 심적 안정감을 준다. 가족이라는 울타리가 소중함을 느꼈던 때였으나 가장 힘들었던 때였기에 어머니를 서운하게 한 점이 많았다.
아파트는 울타리 개념이 없다. 없다기 보다는 주택에 비해 영역이 축소된 느낌인 것 같다. 현관문은 있으나 대문은 없으니까. 아파트를 떠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하니 주변의 대부분의 집들이 팬스나 방부목, 철재로 울타리를 하고 대문을 달았다. 간혹 울타리가 없는 집들이 있지만 그 대신 석축으로 경계를 표시하고는 있다.
전원주택에서는 정원이 그 집의 품격을 드러낸다. 나는 정원과 텃밭을 구상하면서 울타리는 어떤 나무로 심을까 고심하였다. 꽃도 같이 볼 수 있는 연산홍으로 울타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네 집에서 얻어온 연산홍까지 심으니 생나무울타리가 되었다.
그러나 대문이 없다보니 내 머릿속에 ‘우리 집은 울타리가 없다’로 고정되어있다.
대문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해를 넘기고 말았다.
해가 지날수록 울타리 나무는 늘어갔다. 강가에서 캐 온 가시오갈피 나무 몇 그루를 연산홍옆에 줄을 세웠다. 가지를 잘라다 심은 개나리도 가지가 서너개로 늘어났다. 더구나 이웃집에서 소나무 네 그루를 캐주어 심은게 군데군데 자라서 울타리역할을 한다.
현관 앞에는 명자나무와 남천으로 생울타리를 해놓고 나니 없었을 때보다 집이 단정한 느낌이다.
울타리 안에는 꽃밭과 텃밭만 있는 게 아니다. 꽃밭과 텃밭 관리하느라 사들인 농기구가 있고 각종 씨앗 말리는 것, 작업하던 장갑이며 장화, 고무신, 채반, 간이 의자, 강아지집, 강아지산책용 가슴줄, 나사못 통, 화분......매일 쓰는 살림살이가 가림막옆에 놓여있다. 가림막이 복잡한 살림살이를 가려주어서 다행이긴 하지만 사업하던 친구가 사업을 그만 두면서 시골에서는 필요할 거라며 준 콤프레샤까지 있으니 모르는 사람이 와서 보면 깜짝 놀랄 일이다.
대문이 없으니 모르는 이가 지나가다 불쑥 들어와서
“이 동네 땅 값이 얼마냐, 팔려는 땅이 있느냐?” 묻기도 하는 황당한 일도 있었다.
어떤이는 양해도 구하지 않고 주차장에 차를 대고는 볼일을 본후 말도 없이 차를 가지고 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서울에서 살 때 그런 일이 있다면 정말 기가 찰 노릇인데 여기서는 다행이 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성질 급한 분노는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을 수 있으니. 참지 못하고 분노를 드러낸 순간 사람들과의 관계에 금이 갈 수도 을지 모른다. 혹시라도 차를 댄 사람이 우리가 모르는 동네 사람이라면 불편한 사이가 되었을 테고 그것을 해결하느라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게 될테니까.
나는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울타리와 대문이 없어서 이웃이 쉽게 들어올 수 있어 친밀한 관계를 맺는데 매우 긍정적이었다고.
<뒤엉킨 관계의 끈을 푸는 기술>(2019. 손정연)이라는 책을 읽으며 심호흡을 한다. 마을 사람들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줄 날을 고대해 본다. 혼자가 편하다고 하지만 사실은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싶은 게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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