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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양평 전원주택에서 살아남기 3 - 만남 속에서 꿈을 그리다

푸른*들 2020. 1. 15. 12:28

만남 속에서 꿈을 그리다

 

땅은 사람처럼 인격을 가지고 있다. 땅의 다양한 개성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호기심이 생긴다.

그런 땅들을 구석구석까지 데려다주고 설명해주고 사무실로 돌아와서는 시뮬레이션으로 이상과 현실의 벽을 허물어주던 중개업자의 정성과 만나 생기가 있는 땅으로 태어난다.

그래도 어딘가 허전해보이던 땅.

새 애인을 만나듯 뜨거운 가슴을 지닌 땅으로 만들어준 설계사와 건축 시공업자의 정성이 모여 집이라는 선물을 안겨주었다.

은행잎이 노랗게 쌓여 황금길을 만든 가을 날 나는 이사를 왔다. 내 가슴이 두근대듯 땅도 집도 새 주인을 고대하며 두근대었으리라. 이 말은 나의 착각일까?

이웃집에서 심어놓은 들깻잎이 한들거리며 키를 키우려고 봄 햇살을 한껏 쬐고 있던 그 집에 우뚝 들어선 집을 보는 순간 나는 상기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황무지와 마찬가지였던 땅에 나무를 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인생에 건축은 기적이었다. 내가 시골에 가서 살게 될거라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 눈앞에 펼쳐지는 기적에 다리가 후둘거리기도 하였다.

 

다음 해 봄, 집과 잔디만 덩그러니 있는 곳에 우리는 옷을 입혔고 살을 찌웠다. 주말농장 5평은 해보았지만 그보다 넓은 새 텃밭은 또 다른 과제를 안겨주었다. 과제를 해결하느라 업자들이 트럭으로 쏟아부어 거름기 하나 없는 황토 땅에 우리는 또 다른 흙을 더 채운다. 이웃집 덕분에 저렴하게 산 축분을 섞어서 황토에 영양분을 준다. 그런 작업이 바쁜 일상중의 하나다.

남편은 텃밭을 일구어 나가며 궁금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이웃집 젊은 아저씨와 할머니에게 여쭈어본다. 농사짓는게 하루 아침에 잘 되는 것이 아니니 꽃밭을 가꾸듯 예쁘게 보이는 게 우선이다. 처음 이사가서 텃밭을 보며 지나다니는 동네분들에게 잘 보이고 싶은 거였다. 몸이 뻐근하도록 곡괭이질도 한다. “열심히 하고 있군.” 하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도 흡족한데 처음 짓은 농사치고는 만족할 만했다.

우리는 꽃밭가꾸기에도 도전하였다.

울타리에 영산홍을 심고 군데군데 과일나무도 심었다. 꽃이 피고난 후에 농원에서 잘못 주었다는 걸 알아낸 해당화는 가시오갈피 대신에 잘 살고 있다.

또 다른 이웃집에서는 메리골드 모종을 나눠주어 축대위에 모종을 심었다. 물을 주지 않아도 되는 비오는 날에. 메리골드는 여름 내내 빨강 주황 노랑 꽃을 피고 지고 하면서 집 둘레를 강렬한 향기와 함께 빛을 낸다. 우리 집이 더욱 빛난 것은 울타리에 심은 옥수수와 메리골드가 잘 자라주어서 였던 것 같다.


    


 

남편은 텃밭, 나는 꽃밭.

우리는 서로 영역을 정해놓고 일한다. 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정말 그랬다. 여름이 되어갈수록 열 배, 백 배, 천 배의 결실을 안겨준다. 땅만 보면 밟아보고 만져보고 둘러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매력을 지닌 땅,  땅의 인격에 나는 고개를 숙인다.

우리는 따스한 이웃의 관심 속에서 서서히 땅을 이해하고 마을을 이해하고 드디어는 우리 자신들의 숨겨진 꿈을 이해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