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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날, 건망증 이겨내기

푸른*들 2020. 5. 21. 22:16

옥천면에 있는 식당으로 가는 길이다. 집에서 가자면 신호등을 거치지 않고 쉽게 갈 수 있는 지름길로 간다. 그러자면 군청이 있는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해야 한다.

“우회전.”

나는 삼거리에 다다르자 작게 외쳤다.

내 말대로 우회전을 하여 옥천으로 가는 길로 향했다.

운전할 때 간섭하면 운전하는 사람이 헷갈릴 때도 있어 물어볼 때 외에는 모른 척하는데 오늘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얼마전에 옥천으로 갈 일이 있어서 가다가 군청 삼거리에서 우회전을 안 했다. 가다보니 거리도 멀고 신호등을 거치느라 서로 후회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우회전’하고 외친 후에 남편의 반응은 의외였다.

“꼭 필요할 때 도움을 주어야 하는데. 똑같이 잊고 똑같이 기억하니 앞으로 우째 사나?”

내가 잊지 않고 ‘우회전’할 것을 말하기 전부터 남편도 정신차리고 ‘우회전’을 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집에 오는 길에 상가에 들렀다. 남편은 어느 새 사야할 물건들 항목을 적어서 내게 주었다. 어제부터 사야할 것들을 내가 노래를 부르긴 했어도 적어가지고 나올 줄은 몰랐다. 언제부턴가 덤벙거리며 잊기를 잘 하는 나를 이해하고 걱정을 하더니 말이다. 이젠 나를 믿을 수가 없나보다.

 

오늘은 부부의 날이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아도 긴 시간을 같이 살아왔다. 생일 선물 받아본 것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러나 이렇게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만도 다행이다.

조금 욕심이 난다면 남편 말대로 서로 필요할 때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 내가 외출할 때 남편이 ‘자동차 열쇠, 지갑, 휴대폰, 마스크 잘 챙겼나?’ 하고 물어보는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