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아래서 시를 읽고 텃밭을 가꿔요

전원에서 살아남기

느티나무하우스 이야기

이야기

강아지집이 호텔이래요

푸른*들 2022. 9. 16. 21:25

몇 달전에 진돗개 집위에 천막을 사서 조립하고 설치하였다.

천막을 설치하기 전 강아지는 비오는 날엔 비가 들이치고 맑은 날엔 해가 쨍쨍 내리쬐서 뜨거우니 안절부절했었다. 그러니 햇빛을 피해 집 둘레를 다니며 작은 그늘에 기대어 엎드렸었다.

이젠 날씨에 상관없이 편안히 이리저리 둘러보며 짖고 앉고 엎드려잔다.

보미야, 고맙다고 해라. 천막 조립하느라 얼마나 고생한 줄 아냐?”

남편은 말도 못 알아듣는 진돗개와 나를 번갈아보며 말한다.

천막을 바라만 봐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가는 것같다.

천막을 인터넷으로 주문했을 때 기둥을 어디에 세워야 튼튼할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나무틀을 짜서 시멘트를 개서 부어 양생을 하였다. 세워질 기둥 바닥에 놓고 주어진 나사못을 박았다. 강한 태풍이 와도 꿈쩍도 안 했다.

나무판지 바깥쪽으론 상자별로 비료를 넣어두려고 박스도 놓았다. 천막지붕이 있는 자리이긴 하지만 뚜껑이 있어 비가 들이쳐도 괜찮다.

또한 시선을 막아주기 위해서 개집 뒷면에 나무판지를 세웠다. 쓰던 것이라 여기저기 얼룩이 있었다. 보기에 좀 안 좋아서 그림을 그리거나 칠을 해야할 판이었다.

쓰던 페인트가 있는지 다시 살펴보니 마침 초록색이 남아있었다.

비료가 있는 판지쪽에 초록 페인트를 칠했다. 쉽게 부서질 것만 같은 느낌의 판지가 튼튼한 초록색 빛나는 나무판이 되었다. 화장인지 분장인지 그 위력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다.

 

강아지가 있는 데크쪽 판자 면에는 얼룩이 더 심한데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뒷면처럼 그냥 초록을 칠해버릴까 그림을 그릴까? 그림에 자신이 없을뿐더러 페인트도 초록색 한 가지다. 일부러 페인트를 더 살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리저리 붓을 돌려 장난을 쳐보다가 나뭇잎 모양이 되었다. 넓적한 붓 좁은 면으로 나뭇잎을 자꾸 그려나가며 낙서를 해보니 나뭇잎으로 가득찬 무늬가 되어갔다.

장난도, 낙서도 어설프지만 그림이 되어갔다. 숲속에 집 한 채도 그려넣고 말이다.

판자의 얼룩은 나뭇잎 속에 갇히고 말았다.

 

최소의 재료로 커다란 효과를 거둔 날이다.

이웃에선 이렇게 호텔같은 강아지집 처음 본다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신영 동시집 '모여 살아요'  (0) 2023.12.25
예상대로 살 수 있다면  (0) 2022.08.14
대파 김치와 머위대 볶음  (0) 2022.08.03
빗소리에 묻혀버린 음악  (0) 2022.07.14
기운을 내어 살아보자  (0) 2022.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