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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손이 한 일을 오른손이 알아야

푸른*들 2020. 9. 23. 22:09

한달전쯤 왼손을 다쳤다. 손목이 부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반 깁스를 하고 지냈다. 왼손이 한 일을 오른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비웃음이 난다. 비아냥거리는 비웃음이 아니라 허탈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왼손을 못 쓰니 모든 것을 오른 손이 대신 해야 한다. 날이 갈수록 오른손의 힘도 빠지고 오른손목이 삐긋할 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생겼다.

 

왼손이 빨리 회복되어가기를 바라며 시간을 보냈다. 원적외선이 나오는 강력한 전구를 하나 사서 스탠드에 끼워서 매일 쬐며 다독였다. 원래 가지고 있던 원적외선 전구의 조사량이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새로 구입했다.

또한 저주파물리치료기도 구입했다. 전에 쓰던 것이 고장이 난 때문이다. 오래 전엔 선이 있던 것인데 요즘은 무선으로 쓴다. 새로운 타입의 물리치료기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일번에 알게 되었다. 손목에 붙여놓고 근력운동도 할 수 있고 식사준비도 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충전해놓았다 쓰니 전지를 바꿔 끼울 필요도 없다. 갈수록 세상은 디지털시대의 편리함에 물들어 간다.

몇 년전에 사두고 쓰던 파라핀물리치료기도 사용중이다. 손등에 파라핀을 끼얹어가며 손목의 아픈 부분을 다독인다.

그러니 오른 손은 왼손이 한 일을 알아야 한다. 왼손의 아픈 상태가 어떤지도 알아야 오른 손이 대신 더 힘을 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들고 있던 물건을 놓칠 수도 있으니까. 왼손이 물리치료를 받은 이후 얼마나 아픈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지도 오른 손이 가늠을 하고 있어야 한다. 어떤 물리치료를 해야 더 좋을지 선택하는 것도 오른손이고 도와주는 것도 오른손이다.

 

요즘 남편과 같이 하루 종일 같이 지내면서도 느끼는 것이 부부는 왼손과 오른손의 관계와 같다는 것이다.

나의 마음 상태가 어떤지를 알아채가며 도와주는 남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마찬가지로 남편의 마음이나 신체 상태가 어떤지를 내가 알아채면 남편이 얼마나 좋아할까.

그러나 좀 몰라준다고 해서 삐치거나 투덜대면 관계는 더 나빠지니 인간관계는 잘 보이지 않는 거미줄이 끊어지거나 뚫리지 않도록 욕심을 버릴 일이다.

반 깁스대신 부드러운 아대를 착용하니 그런대로 살 만하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유연해졌으니 말이다. 그런 생각도 욕심을 버렸다고 할 수 있나?